살바도르 달리 - 천재인가 바보인가
괴짜임과 동시에 천재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1904년, 스페인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달리는 위로 형이 있었는데, 달리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때문에 달리의 부모님은 달리를 '죽은 형의 환생'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달리의 이름도 형 이름이었죠. 달리는 계속해서 형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보이려는 노력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강박증, 편집증, 이중인격, 다중인격 등 다양한 정신병을 앓게 되었죠. 그러면서 달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자신으로 인정받기 위해 행동을 한 것인데 이건 범죄까지 넘나드는 지경으로 이르렀습니다.
달리의 이상행동은
발작적으로 소리지르다 갑자기 웃기
개미에 뒤덮인 박쥐 시체 입에 넣기
염소똥으로 만든 향수 뿌리기
죽은 어머니 초상화에 침 뱉기
여자 아이를 높은 곳에서 밀쳐버리기
게이인 친구 강제로 아웃팅시키기
애완동물로 개미핥기 기르기 등등
하지만 다행이도 괴짜적인 면모는 예술로도 표출을 했어요. 그리고 꽤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죠. 덕분에 달리는 17살에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입학을 한 달리는 시험기간에 "내가 교수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에 시험지 제출을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미술학교에서도 기행을 이어나가며, 결국 퇴학 당하게 되었죠.
대학교를 퇴학당한 후, 관심을 보인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었습니다. 정신분석학은 당시의 일반적인 심리학과 다르게,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 집중했던 학문이었어요. 인간의 무의식이 의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간주한 것이죠. 이 이론은 당시 의사, 학자,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어요.
그렇게 예술계에서는 '초현실주의'가 탄생합니다. 초현실주의는 꿈 같이 '무의식'의 세계를 그리는 예술 사조인데요. 초현실주의는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당시엔 산업혁명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물질만능주의가 사회에 만연했기 때문이었죠. 한편 초현실주의는 무의식, 꿈 같은 현실 도피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현실이 힘든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어요. 그리고 달리 역시 초현실주의에 함께 했고요.
이 시기 1931년 달리의 작품 "기억의 지속"인데요.
이 작품은 무의식의 공간인 '꿈'속에 나타난 잠재적 욕망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그림으로 인해 달리는 27살에 초현실주의 대표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맘떄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그룹에서 달리는 쫓겨나게 됩니다. 초현실주의는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논조를 갖고 있었는데 달리는 자본주의를 찬양하고, 히틀러 독재자를 옹호하는 등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화풍은 초현실주의이지만 사상은 정 반대였죠.
이 과정에서 달리를 이해해준 건 '갈라'였습니다. 그녀는 10살 연상의 유뷰녀였는데 달리의 끊임없는 구애로 이혼 후 달라와 재혼을 하게 되어요. 달리는 갈라를 만난 직후부터 모든 그림에 서명을 '갈라와 달리'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 만큼 달리에게 중요한 인물이네요.
갈라는 달리의 뮤즈였을뿐만 아니라 달리가 작품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왔습니다. 그의 작품 판매나 전시 스케줄 관리 등 예술가로서 달리의 행보 전반에 도움을 주었죠. 이들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미국으로 함께 이동 합니다.
미국으로 이동을 해서 달리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그 작품들로 인해 인정을 받게 되는데요. 이 시기 달리가 내놓은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이중 이미지 기법'이죠. 여러 인물이 군집해 있는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림 가운데에 인물의 얼굴이 보이기도 하죠. 하나의 그림에 두 가지 다른 객체가 보이는 것을 이중 이미지, 이중 그림이라고 하는데요. 달리의 그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달리는 작업의 장르를 넓혀 책이나 잡지의 표지 디자인 뿐만 아니라 무대, 디자인, 영상 작업 등 다채로운 장르로 뻗어갑니다.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추파츕스 포장지 디자인'이죠
이후 달리는 예술 분야 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인정받으며, 초현실주의의 대가 에서 '현대미술 전반에 큰 영햐을 준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하지만 76세가 되던 1980년 중풍의 영향으로 붓을 잡기 어려워 작품을 만들기 어려워집니다
이 시기에는 아내이자 뮤즈였던 갈라와 불화설이 있었는데 갈라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달리는 삶의 의미마저 잃게 됩니다
1989년 그는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세블럭 떨어진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바티칸에 전시된 1977년에 완성된 작품 '천사들의 풍경' 입니다